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ᴄᴜʙᴇ/ɢᴇʀᴍᴀɴʏ

떠난다는 것

떠나고 싶다, 라는 생각은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여러명의 학생이 같이 사는 WG(Wohngemeinschaft)에서 나 포함 4명의 여학생과 살고 있다.

한국에서 결과를 받고 급히 집을 구해 이곳으로 떠나왔기 때문에 ,

되는대로 가장 비싸지 않은 선에서 집을 구해 왔다.

 

베를린 시절에도 여러명과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리 부담감은 없었지만,

그때는 한국 사람들과 살았기 때문에 지금과의 생활과는 좀 다르다.

사실 첫 5개월은 옆방의 친구가 남자애였기 때문에 샤워실을 다닐 때

눈치가 좀 보였다. 그 친구도 아마 불편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가 조용하게 지내서 (가끔은 너무 조용해서 있는지 없는지 몰라 

예상치 못하게 놀라기도 했다.) 그 외에는 별 불편함은 없었다. 

가끔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했다.

 

코로나 이후 6개월을 한국에서 버티다 독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살고 있던 친구들은 다 사라졌고

집의 분위기는 무언가 어수선했다.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이 집을 다시 떠나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애써 무시했다. 나는 돌아온지도 얼마 안됐고, 그랬기 때문에 체념도 했었고 노력도 했었다.

그냥 여차 잘 지내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유일한 행복을 가져다 주었던 창밖 풍경

 

마치 잘 차려입은 겨울 니트 안 어딘가에 껴있던

까끌한 머리카락때문에 그 날 하루를 망쳐버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소한 감정들을 무시하면 안된다. 더군다나 혼자 사색하거나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말이다. 무시한 감정들은 켜켜히 쌓여 스트레스로 돌아왔고, 그 스트레스는

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에 잘 들지 못했고 공부와 작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건강한 일상패턴은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다른 집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높아진 물가와 기숙사의 희소성 때문에

가격은 비쌌고 외국인에게 집을 쉽게 넘겨주는 독일인을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기숙사들을 찾았고, 예상보다

비싼가격때문에 학생의 신분으로 조금은 손이 떨리는 계약조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한 학생에게 관대했다.

 

이 괴로운, 반복해서 떠오르는 

집에 대한 날선 감정은 올해로 끝내고 싶다. 

 

이제 오롯히 내 자신과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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