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ᴄᴜʙᴇ/ɢᴇʀᴍᴀɴʏ

고무줄과 철사

 

지나가며 움직이는 시간들

오늘은 멍하니 길을 응시하고 지나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나는 정지해 있는데 주변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

무언가 많이 지나온 것 같은데,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고 있지 않은 상태 그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 같다. 

눈 앞에 일렁이는 풍경들은 수많은 정보를 끌어안고 무서울 정도로 다가오지만, 나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는 

무기력함을 등에 지고 서있었다. 

 

최근 주변의 환경이 다시한번 바뀌었다.

한동안 고정되어있던 위치를 바꾸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대와 흥분을 동반하지만 이 감정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된다.

작년 말 부터 오랜기간 아파왔던 나는 아무래도 그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혹은 이것도 그냥 스스로 위안을 삼을만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8학기를 시작했다.

독일에서 14번의 계절이 학생이란 신분으로 지나갔다.

두 나라를 오가며 작업도 전시도 일도 바삐도 지냈다.

계절이 지날수록 견고해 질 것 같았던 나는 기대와는 다르다.

계속해서 스스로의 나약함을 마주한다. 

 

19년 여름. 입학 시험에서, 나는 미래의 나의 상태 묘사를 하는 내용을 풀어냈다.

고무줄과 철사에 묶인, 마주보고 있는, 두개의 의자.

그리고 고무줄과 철사를 합쳐놓은 빨간 줄은

그 당시 읽고 있던 책의 한 문장을 가르키고 있었다.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난 아직도 그 빨간 줄 위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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